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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요약

    2016.09.20 14:52

    함께 기뻐 하십시오

    조회 수 281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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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도 한쪽에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몰려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새 길로 인도하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천대받고 무시 받았던 설움이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씻겨 내려가는 걸

    그들은 체험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 드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한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나, 궁금했는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된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이 따뜻해지기보다,

    예수님의 식사 때문에 그들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들은 투덜거립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무척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그들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니는 길이 다르기에, 만날 수도, 만날 필요도 없는 사이인 셈입니다.

    당연히 한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나눠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끔찍하고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백부장 고넬료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 갈지 말지

    고민합니다. 유대인이 이방인 집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

    율법이 부정하다고 규정한 동물을 잡아먹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듣습니다.

     

    그는 이방인과 사이에 가로막혀있던 높은 담장이 점차 무너지는 걸 깨달으며 길을 나섭니다. 다녀온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 회중의 일부는,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은 점을

    들어 나무랍니다.(11:3)

     

    그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세례까지 베풀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묻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베드로가 이방인과 얼마나 접촉했는가, 그래서 얼마나 불결해졌는가에 몰려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편견어린 시선을 깨기 위해, 미리 활동하셨던 성령님에 대해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편에 갈라 서 있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참 어려웠습니다.


    사실 일전에도 예수님은 불평하는 바리새인들을 불러 얘기해주시곤 했습니다.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잔치에 앉아 식사하실 때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고 불평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께서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5:31)

     

    누가복음에서 향유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바친 여인의 이야기의 배경은 바리새인의 집(7:36)입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이후에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대화하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그들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부자가 그것을 찾으러 나가서 끝까지 뒤져 찾아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집에 돌아와, 벗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가난한 여인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빗자루로 쓸며 샅샅이 뒤져서, 그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냈습니다.

    그 여인도 마찬가지로 벗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는 분명히 세리들과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바로 주인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비유 이야기에서 회개라는 단어가 갑작스럽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농담입니다만, 양이나 드라크마에게 무슨 회개를 요청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옷을 찢으며 회개했다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들이 끔찍한 범죄를 고백했거나, 일상의 게으름에서 돌이키거나, 일탈하는 삶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는 묘사도 없습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눈에 보이는 어떠한 회개의 행위를 했는지는 이 단락의 관심이 아닌 듯싶습니다.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단지 한 가지뿐입니다.

    잃은 것을 끝까지 찾고자 하는 주인에게, 또 불을 켜고 바닥을 쓸며 샅샅이 뒤지는 주인에게, 그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1절의 표현처럼, 그들은 모두 예수님 가까이 몰려들었을 뿐입니다.

     

    최소한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회개를 이렇게 정의해야겠습니다.

    회개는, 자신들이 주님께 발견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리야말로 하나님이 찾으려고 애쓰셨던 바로 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은 단지 기쁨의 자리에서 그들이 같이 기뻐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앉는 순간, 저 세리들과 죄인들처럼 낮고 천한 자리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마치 다시 마음 잡았다고 떠들어대는 전직 불량배와 어울리려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요. 도저히 세리들과 같은 자리에 앉는 걸 인정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들은 자신들과 일체 무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주님은 투덜거리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이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잃은 양을 찾아서 오늘 내가 무척 기쁘단다. 너희의 마음의 벽, 선입견과 편견을 털어버리고, 나의 곁에, 우리 서로 모두 함께 이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면 좋겠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불평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주님께서 다가가신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주님은 찾고, 경청해 주시고, 답변해 주시고, 식탁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들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앉아 있는 주님이 잃었다 찾은 양들이 신경에 거슬렸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양뿐만 아니라 주님과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편견과 아집 속에 서로 오갈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 한가운데 주님께서 서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이편저편 모두가 무장해제하고 서로 사람과 사람으로 따뜻하게 만나는 것인데, 참 어렵습니다.

     

    한없이 받아주시고 품어 안아주셨건만, 자기 선입견에 걸려 넘어지는 수많은 오늘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보며, 주님은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곳곳에 기쁨의 식탁을 마련하시고, 멀찍이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초대하십니다. 나랑 서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너의 곁에 자리를 마련하시고, 부르십니다.

    서로 모습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교파가 달라도, 서로 이것저것이 다르고 또 달라도,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서 같이 음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같이 마음껏 웃고, 조금씩 마음이

    따뜻해지고, 서로 위로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꿈을 함께 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잃었다 찾은 바로 그 양입니다. 동시에 기뻐하시는 주님과 함께 기뻐하며

    식탁의 교제를 나누고 있는 주님의 벗과 이웃 사람들입니다.


    질문

    1.우리의 식탁을 진정으로 나눌 이웃이 있는가?


    2.나는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가?


    3.하나님의 마음을 나는 이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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